라이프로그


7.11 2008년의 기억

 뭐랄까. 뭐로 시작해야할까. 하루가 지난 후에 감상을 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것 같다. 그 하루를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노동과 함께 시간이 빨리가기만을 기원하며 보냈기 때문에, 그 이전의 기억이 남아있질 않을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지금 쓰지 않으면 나는 내 느낌을 영원히 남길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랄까. 아니면 내가 노동을 하고 와서 인지 내 여가시간이 단지 잠으로만 채우기에는 너무 귀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뭐든간.

 

1.  p.m3:28분 기상. 어제 잠깐만 게임을 한다는게 새벽 5시까지 해버리는 바람에, 그리고 그렇게 잠깐 잠깐 컴퓨터를 한다는게 거의 언제나 새벽 5시까지 하기 때문에 나의 생활패턴은 학기 중과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따라서 나에게 아침을 포함하여 한낮인 12~2시까지의 시간대는 사라졌다. 그리고 나에게는 새벽시간대가 생겨났다. 이전에 나는 새벽에 글을 자주 쓰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생각이 없는 탓인지 아무런 글을 쓰고 싶지도 텍스트를 보기도 싫어진다. 따라서 새벽 시간대에는 주로 게임을 한다.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기에는 가장 적합한 활동이다.

 여튼 나는 내 비어버린 시간들을 약간은 아까워하며 주섬주섬 일어나 먹을 것을 챙겨먹었다. 핸드폰을 봤다. 시간이 보였다. 날짜도 보였다. 기승이형 생일이었다. 기승이형한테 전화를 했다. 간단하게 안부 인사와 더불어,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기승이형은 고맙다고 말했다. 뭔가 형식적이었다. 기분 나쁘지는 않았지만 조금 웃겼다. 나는 다음 주 노가리에서 어떤 주제를 발표해야할지 얘기를 꺼낸 뒤, 영화 한 편 보는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기승이 형은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오늘은 안된다고 말했다. 오늘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단다. 나는 오늘 아니면 시간이 없었기에, 그렇다면 다음 기회에 보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뭔가 하고 싶었다. 의미있는 활동? 아니 의미있어보이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가 더 올바른 말인듯 싶다. 한 때 그저 방에서 뒹굴거리고만 싶었지만 그것도 한 때인가보다. 그것이 나의 생활이 된 지금 나는 무엇인가 활동을 하고 싶어졌다. 때마침 꺼리가 생겼다. 나는 스터디를 하기위해 책을 사러 교보에 나가기로 결정했고, 나가는 김에 영화라도 아무거나 보고 싶었다.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닌, 내가 컨버시간에 그렇게 강조했던 스스로 STATIC MOVIE라 명명한 영화의 종류를 보고 싶었다.

 나는 옷장에 있는 옷 중 최근에 샀으나 맘에 들지 않아 입지 않던 옷을 입고 길을 나섰다. 교보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책을 읽었다. 상실의 시대. 책을 보는 느낌이 꽤나 이상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내가 책을 볼 때 나는 내가 타자를 치듯이 자음 하나하나 모음 하나하나를 느껴가며 읽는 듯했다. 아마 이전에 이 책을 앞에 두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가며 글을 썼기 때문일까 추측해보았지만 그것이 완벽한 이유는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튼 나는 신기해하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교보 가기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씨네큐브에서 영화표를 한 장 끊은 후 교보로 서둘러 향했다. 영화는 8:45분에 시작. 그리고 티켓팅을 한 시간은 8:10분이기 때문이었다. 교보에는 사람이 많았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팬시점까지 생겼다. 음반같은 것도 판매하고 있었다. 처음 교보 왔을 떄와는 다른 느낌. 굉장히 상업적으로 변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려고 했던 책을 샀다.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행동인 '음반구매'를 감행했다. 그것이 무슨 음반이었던 것은 상관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음반구매'라는 행동을 하고 싶었다. 왠지 인터넷에서 사면 그 느낌이 떨어진다랄까. 맞다. 나는 행위의 사치스러움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음반구매' 행동을 마치고 나니 조금 초조해졌다. 영화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기 떄문이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영화 시작 2분전에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물 한병을 산 후 영화관에 입장했다.

 

2. 이번에 본 영화는 카운터페이터. 일단 네이버 영화 소개에 나온 글을 보고 완전 낚였다고 말할꺼다.

 

'천재로 태어났지만 도구로 사용된 남자

역사상 최대의 위조지폐 작전에 투입된 천재적인 위조 전문가!세상조차 속일 수 있었지만 영혼만은 속일 수 없었다!

 독일에서 ‘위조의 제왕’으로 명성을 떨치며 화려한 삶을 살던 살로몬 소로비치는 경찰에 체포된 후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타고난 그림 실력과 예술적 재능으로 나치 친위대 간부들의 초상화 등을 그려주며 다른 수용자들보다 나은 생활을 누리던 소로비치는 수용자 중에 전직 인쇄 기술자, 은행 직원들과 함께 나치의 대규모 위폐 생산과 공문서 위조 작전인 ‘베른하트 작전’에 투입된다.

 실패하면 죽음 뿐인 작전에서 탱고 선율이 흐르는 작업 환경과 탁구대 등 다른 수용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혜택이 이들에게 주어지지만, 영국 파운드에 이어 미국 달러까지 완벽한 위조를 눈앞에 둔 이들은 삶과 영혼의 양심이라는 선택 속에서 갈등하기 시작 하는데…'

 

세상조차 속일 수 있었지만 영혼만은 속일 수 없었다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살리의,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치의 끔찍한 행위들. 모욕적인 행위들. 그것들을 보며 저들이 과연 사람이 맞을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나를 환장하게 했던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상황.

 유태인으로 태어났기에, 하필이면 유태인으로 태어났기에. 그는 그리고 그들은 그런 참혹한 수모와 학살을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유태인이었기에 포로로 끌려들어와서 나치의 승리를 위해 영국 화폐를 대규모로 위조하여 영국 경제를 뒤흔드는 '베른하트'작전의 일부로써 위폐를 제작해야만 했다. 제작한다면 나치의 승리를 돕는 것이었고, 제작하지 않으면 죽는다. 이 어처구니 없는 모순. 부조리.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저 유태인으로 태어난 것일 뿐인데.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는 이런 어처구니 없고 어이없는 모순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내가 협력하면 나는 생존하지만, 지금 보다 더 많은 이들이 나치의 만행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야할 것이고, 내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죽는 다는 것. 나는 무엇을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이 상황에서 그는 삶을 바라보았고, 생존을 선택했다. 실존의 부조리 덩어리 속에서 나는 다만 슬플 뿐이었다. 미치고 환장하는 상황이지만 어떻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 상황이 다만 슬프고 답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도, 그들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이 부조리의 덩어리 속에서 그는 양심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것은 위폐제조를 하지 않는 적극적인 노력이 아닌,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 싶은 소박한 양심을 위한 어떻게 말하면 소극적인 노력이었다. 영화 속에서 한 인물이 나치가 파운드 뿐만 아니라 달러까지 위폐하려고 하자 그는 계속 해서 인쇄하길 거부하며 한달을 버틴다. 그 때문에 위폐제조에 동원되는 이들 모두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지만 밀고 한다면 한 사람, 그의 주변에 한 사람의 목숨이 스러져버리기에 그는 그 인물의 행동을 묵인한다. 그정도이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부조리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내에서, 그 한계 속에서 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만을 행할 뿐이다.

 실존 철학에서 말하는 지극히 실존적인 인물이지만, 그리고 실존하는 인간양상이지만, 그 양상은 너무나 서글프다. 슬프다. 애처로울 뿐이다. 내가 세상에 이렇게 던져졌다는 이유로, 그 한계 속에서 발버둥치는 그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나는 내 삶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이렇게 영화를 보고 있는 것도 사치스러웠고, 책을 산 것도, 영화 본 후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볼펜의 흔적처럼 감정이 지워지지 않아 맥주를 마신 것도 사치스러웠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 있는 것이 너무나 사치스러웠다. 어떤 사람은 태어난 것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저런 삶을 살았는데. 똑같이 태어난 나는 이렇게 사치스러울 수 있는가.

 적어도 그 날만큼은, 그리고 지금 그 날을 기억하는 이 순간만큼은, 또 언젠가 이 순간을 상기할때만큼은, 내 삶의 사치스러움에 대해. 그리고 그의, 그들의 삶의 처절함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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