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16일
09. 3. 14
새벽 4시 35분쯤에 개강총회의 자리는 파했다. 형들은 여관으로, 나는 과방으로 향했다. 날씨는 추웠다. 목덜미를 핥고 지나가는 바람은 나를 오들오들 떨게 만들었다. 이가 떨려왔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그 후에는 지속적으로. 떨려오는 소리가 경쾌하다. 나는 옷을 여매지 않고 내게 다가오는 바람을 온전히 맞이한다. 이를 너무 떨어서일까, 뒷목이 뻐근하다. 나는 이를 앙 다문다. 그리고 깡총깡총 뛰는 가젤처럼 깡총깡총 과방으로 뛰어갔다. 과방에는 장판이 없었다. 왠지 자는 것은 그른듯 했다. 시간은 5시. 나는 글을 써내려갔다. 5시 30분. 언어철학에서 발제할 부분을 읽어보았다. 6시. 쏟아지는 잠을 이겨낼 수 없었다. 나는 온열기와 온풍기를 가까이에 놓고 옷을 여매고 잠을 청한다.
꿈에서 여러 사람이 나왔다. 꿈에서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건강할 때의 강산이형도 나왔던 것 같다. 그 꿈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일어났다. 시간은 9시. 명진관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날은 여전히 추웠다. 도서관에서 써내려간 글들을 옮기고, 도서관에 앉아 다시 언어철학에서 발제할 부분을 읽었다. 시간은 10시. 잠이 다시 쏟아졌다.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허리를 굽힌 채로 잠을 청하려고 해서 인지, 허리가 뻐근해서 잠이 잘 안왔다. 그렇게 뒤척거리며 1시간을 보냈다. 11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과방에 가서 잠을 청했다. 온풍기를 배위에 올려놓았다. 온풍기에서 나오는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이 배를 타고 얼굴까지 밀려온다. 다시 꿈을 꿨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렴풋이 기억하길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좀 더 마음이 편했다. 나는 온풍기를 옆에다가 내려놓았다.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으로 옷이 달궈졌다. 나는 두 팔로 옷이 살에 닿도록 꼬옥 껴안았다. (나는 나를 껴안았다.) 나는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꿈을 꾸었다.
2시에 깼다. 나는 조금 더 차분해져 있었다. 이정도면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될 것 같았다. 거울을 봤다. 원래 두드러진 광대뼈가 더 두드러져 보였다. 얼굴은 노랬다. 눈은 조금 붉었다.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컴퓨터실에서 앨리스 스터디에 관한 글을 학부클럽에다 올린 뒤, 잠깐 엘리스와 데카르트에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집으로 향했다. 담배가 피고 싶었다. 그러나 담배는 어제 새벽 모두 피워서 없다. 학교에서 내려가는 길에 담배를 살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주변에 보이는 사물들은 더 없이 또렷했다. 마치, 이전에 보아왔던 세계가 비현실적인 것처럼, 너무나 또렷하게 모든 현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상들이 발하는 경계가 또렷한 것이 아니라, 내게 들어오는 현상의 흐름, 그 자체가 너무나 또렷했다. 모든 것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다시 말한다면, 현상의 흐름 중 하나에만 집중하며 '보는' 것이 아니라 흐름 자체가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담배를 피면 이 느낌이 사라질까봐, 나는 담배를 사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상황을 다시 생각했다. 이전처럼 불안하거나 요동치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문자가 왔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나는 상황을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스터디를 어떻게 꾸려나갈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들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내 머릿 속에 떠올랐다. 앨리스. 앨리스를 생각하는 것은, 지금 내 상황을 정리하고, 죽이는 데에, 다시 말하면 상황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저, 비논리적이고 무의미한 놀이의 세계에서, 놀면 되는 것이다.
집에 와보니 5시였다. 나는 식은 밥에 엄마가 해놓은 오징어볶음을 데워서 그 위에 얹었다. 오징어덮밥 완성. 나는 먹었다. 첫끼였다. 밥을 먹고 나니, 또렷한 세상은 점점 흐릿해졌다. 내 생각도 멎어갔다. 나는 이불 속에 몸을 파묻었다. 의식은 희미해진다.
일어나보니, 9시였다. 뉴스를 보고, 다큐멘터리를 본다. 진화론과 창조론에 관한 다큐멘터리.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잘 가다가 왜 언제나 조화로 결론을 맺어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조금 논란이 있으면 안되는건가.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음은 조금씩 평온을 되찾고 있다. 그리고 이 일기를 끝으로, 내 치유의 과정도 끝이 날 것 같다.
# by 코로리 | 2009/03/16 03:12 | 2009년의 기억 | 트랙백 | 덧글(0)



